북한산 국립공원에서 길 잃었던 이야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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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산행을 즐기는 저는 오랜만에 도봉산ㅡ북한산 코스에 갔었죠.

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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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빠르게 정복하고 북한산 우이동 방향으로 넘어가는 와중에 평소 가보지 않았던 샛길을 택하여 지름길이라 여기고 진입했었습니다.

그게 실수였죠..

한 2km쯤 타다가 길을 잃었어요. 워낙 인적이 없는 길이여서 길인지 아닌지 도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첩첩산중이였죠. 게다가 절벽과 거친 비탈이 많아서 선택 가능한 길도 거의 없었습니다.

카카오맵을 켜서 위치를 확인해보니 정규등산로와 약 500m 정도 떨어진 위치더군요. 물론, 등고차때문에 20m 남짓의 절벽을 내려가야만 등산로로 갈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결국 되돌아가기로 마음 먹었죠.

허나 돌아가자니 너무 깊이 들어와서인지 도무지 돌아가는 길을 모르겠더군요. 덜컥 겁이 들었습니다. 와... 몇 시간 뒤면 일몰인데.. 난 이제 조난당했구나. 그러길래 정규등산로를 탔어야지..라며 후회하며 무작정 사방을 헤맸습니다.

돌아가는건 포기한지 오래였고 어떻게든 비법정탐방로라도 만나서 가장 가까운 하산코스로 진입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보통 산에서 조난당한 경우에는 사방위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걸 모른다면 태양이 떠 있는 위치와 시간을 토대로 가늠하는 법 등이 있고 그것조차 어렵다면 계곡과 능선을 찾으면 됩니다. 계곡을 발견했다면 계곡을 따라서 산 위로 올라가면 정상에 갈 수 있고, 능선을 발견했다면 능선을 따라서 내려가면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우주최강 뿜뿜 스마트폰이 있었기에 그나마 안심이었죠. 과학기술의 위대함을 느끼며...

현재위치와 등산로 사이의 간격과 방향을 수시로 확인하며 거친 비탈을 거의 미끄럼틀 타듯이 내려갔습니다. 손과 엉덩이로 산을 탄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였죠. 이게 모하는 짓일까.. 오만때문에 고생 길을 걷는구나라는 깨달음, 조난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야생 들개나 멧돼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걱정, 혹여나 뱀을 건드리지 않을까하는 우려 등으로 뒤섞여서 허겁지겁 땅만 보며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십분가량을 처절하게 헤매고 있는데, 오래되어서 썪은 낙엽더미 위로 아주 작고 귀여운 실뱀 한 마리가 꿈틀거리는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얼어붙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낙엽더미 아래 크고 작은 돌들과 나뭇가지들 사이로 거의 수십마리쯤 되보이는 크고 작은 검은색 뱀들이 우글거리는게 보였기때문이였죠. 시발 이게 말로만 듣던 뱀지옥이구나했죠. 뱀굴은 아니였는데 돌과 나뭇가지, 그리고 낙엽으로 적절히 조성된 동공에 한데 가득 모여있는 모습이였습니다.

그동안 등산을 하며 여러번 뱀을 마주치기는 했었지만 그토록 괴기스러운 광경은 난생 처음이라 기겁을 하며 바로 뒤 돌아 냅다 뛰었습니다. 무작정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를 보자마자 기어 올라갔죠. 그때까지만 해도 뒤에서 뱀들이 절 쫓아오고 있다고 생각했죠. 다행히 망상이였습니다. 막상 숨을 가다듬고 주위를 살펴보니 저 혼자 생지랄을 했더군요.

다시 시작된 조난길에서 혹시나 움푹 페인 곳은 없나, 낙엽과 나뭇가지 밑에 무언가가 있는게 아닐까하며 등산경력 10년이 부끄러울만큼 아장아장 주법을 시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탁 트인 작은 개활지에서 또다른 샛길을 발견했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님들이 걸었을거라 추측되는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매우 초라하지만 안전한 길이였죠.

조난당한지(?) 대략 한 시간만에 겨우 하산한 저는 산을 벗어났다는 기쁨과 도시에 있다는 안도감이 강렬하게 몰려왔고 사람들과 차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군요. 기진맥진한 저는 근처 사우나로 가서 잠을 청하려했습니다. 누가 본 것은 아니지만 뭔가 창피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그런 기분들에 뒤섞여서 피로에 쩔은 몸을 이끌고 사우나로 향했죠.

대충 샤워를 마치고 탕에 들어가려는데 순간 깜짝 놀라서 담갔던 발을 바로 뺐어요. 탕 바닥은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사각형 타일들이 조밀한 모습이였는데 물 속 굴절때문에 일렁이는 타일의 선들이 아까 본 우글거렸던 뱀들과 비슷하게 보여서 놀라버렸던거죠.

솥뚜껑보고 놀란 가슴 부여잡고 대충 씻고 나와서 수면실로 와서 쓰러져 자는데 조금 추운 느낌에 눈을 떠보니 저는 여전히 산 속이였습니다... 이 무슨... 날은 이미 저물어서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상황이였죠. 아까 도망쳐서 올라 온 큰 바위 위에서 기절한체 잠이 들어버렸던거죠. 이름모를 곤충과 새 울음소리만 가득한 산 속에서 스마트폰 후레쉬에 의지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몇 번은 발을 헛디뎌 크게 고꾸라졌죠.

패닉상태가 된 저는 아예 이동을 포기하고 날이 밝을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움직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구조대에 신고를 할까 망설여도 봤지만 뭔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은 기분, 산악인으로서의 마지막 체면(?)같은 것들에 체념했죠.

매우 지친 저는 적당히 덜 축축한 자리를 찾아 그대로 주저앉아 또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었는데 아주 쨍쨍한 낮에 여전히 산이더군요. 일반적인 등산로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꿈에서 또 한참을 걷고 있는데 제 앞이 갑자기 어둑해지면서 이번에는 정말로 엄청나게 큰,, 초가집만한 검은색 뱀이 제 앞에 떡하니 나타났습니다. 으아악이란 비명이 절로 나온 저는 고개 한번 못 들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습니다. 그렇게 빌고 있는데 놈이 제게 다가와서는 대뜸 말을 하더군요. '우리가 있는 곳을 인간들에게 말하면 널 산체로 잡아먹겠다'.... 딱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눈이 퍼뜩하며 떠졌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사우나 수면실이였습니다. 이건 뭐 산셉션도 아니고 신기하지만 괴랄맞은 경험이었죠.

위에 스샷은 아버지와 문자를 주고받은 내용 일부인데요, 집에 가자마자 아버지는 저를 엄청나게 혼냈습니다. 혼나도 쌌죠.

만약 뭣모르고 그 낙엽더미를 밟고 그 우글거리는 곳으로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어쩔뻔했을까... 놈들이 일제히 따라오기라도 했다면.... 미처 샛길을 발견하지못하고 그 험한 산 속에서 무방비 상태로 밤이라도 맞이하게 되었다면... 휴...

그 후로 등산할 때는 가본 길, 검증된 길, 안내판이 가리키는 길 등 안전한 길이 아니라면 거들떠도 안 보고 지나칩니다. 산악회 동료들에게도 경험담을 말하며 안전산행의 첫 걸음은 겸손이라며 신신당부해오고 있어요. 웃대인 여러분들도 제 아무리 젊고 체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산에서만큼은 늘 안전에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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